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토니 애벗 (문단 편집) == 생애 == [[영국]] [[런던]]에서 영국인 아버지와 호주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딕 애벗은 [[뉴캐슬]] 출생이고 1940년 [[호주]]로 이민갔으며 2차대전 때 호주 공군에서 복무했다. 어머니는 1933년에 [[시드니]]에서 태어났다. 밑으로 3명의 여동생이 있으며 애벗 가족은 1960년 시드니로 떠났다. 애벗은 1983년 [[시드니 대학교]] 경제학, 법학을 복수전공해 졸업했고 [[영국]]으로 유학을 가 1989년 [[옥스퍼드 대학교]]에서 [[PPE]] 학사 학위를 취득했다.[* 옥스퍼드에서 석사 학위도 받았지만, 이는 졸업 후 일정 시간만 지나면 자동으로 수요하는 것이라 큰 의미는 없다.] 대학교 시절에는 아마추어 복싱 선수로 활동하기도 했다고. 원래 그는 영국 국적만 가지고 있었는데 대학생 시절이던 1981년 호주 국적을 취득했다.[* 1993년 영국 국적을 포기하면서 단일 국적자가 되었다.] 이 후 언론인으로 일하다 1994년 처음 국회의원에 당선되었으며 이 후 여러 장관직을 거쳐 2009년부터 2013년에는 [[자유당(호주)|자유당]] 대표로 활동했으며 2013년 총선에서 승리해 마침내 호주 28대 총리에 당선되었다. 그러나 총리가 된 뒤에 계속된 삽질로 국민들의 빈축을 샀고, 여론 조사에서도 [[호주 노동당|노동당]]의 우위가 이어지자 결국 [[맬컴 턴불]]등 [[자유당(호주)|자유당]] 온건파에 의해 총리 자리에서 쫓겨났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를 쫓아낸 장본인이자 그의 후임인 [[맬컴 턴불]]도 3년 뒤 그와 비슷한 과정으로 쫓겨나게 된다. 2019년 5월 18일 총선에서 기후변화이슈를 주도했던 노동당의 집중견제로 선거 막판에 후보포스터도 훼손[* 자유국민연합 소속 정치인 중에서 유독 강경 보수 성향이 강한탓으로 이번 선거에서 좌파 성향 시민단체가 그의 지역구에서 상주하면서 낙선해야할 주요타겟으로 지목된데다가 지역민들의 25년 장기집권 피로감이 더해져 위와 같이 참패하는 결과가 나온것이라는 호주 현지 언론의 분석이 있다.] 되는 등 심각한 고전이 예상되더니 결국에는 '''25년간 자신이 지켜왔던 워링거 지역구 의석을 무소속 야권 후보에게 15%p차로 대패하며 내주고 말았다.'''[* 그리고 2019년에 애벗을 의회에서 쫓아낸 잘리 스테걸 의원은 2022년 총선에서도 가뿐히 재선에 성공한다.] 패배 연설에서 애벗은 "포기자가 되느니 패배자가 되겠다"[* I would rather be a loser than a quitter]고 했다. 여담으로 2015 총리직을 갑작스럽게 턴불에게 내쫓기듯이 내주며 그 이후 권토중래하면서 자유당 당수로의 복귀를 꿈꾸는듯이 보였지만 결국 최종적으로 의회 입성에도 실패하며 이전 총리들이 그랬듯이 사실상 정계은퇴로 평범한 소시민이 되게 되었다. 징병제 재도입을 주장하기도 했다.[[https://m.yna.co.kr/view/AKR20221107059600093?section=international/all|#]]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